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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극대본 - 국물 있사옵니다

 



국물 있사옵니다.hwp

무 대

어떤 아파트와 회사 사무실, 그리고 길거리를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는 무대. 무대가 구태여 사실적인 필요는 없다. 대체로 무대 우측은 아파트의 실내, 좌측은 회사 사무실로 구분된다. 관객석 가까운 무대 전()면은 길거리, 복도 또는 공원구실을 한다. 관객과 아파트의 실내 사이는 그대로 트여 있지만, 그 사이에 벽이 가로막혀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. 실내 앞 무대는 또한 아파트의 복도도 겸한다.

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상황 이외에는, 즉 과거지사를 말하거나 재현할 때는 공간 처리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.

 

교회 종소리와 더불어 막이 오르면 아파트의 실내 모습이 나타난다. 종소리가 여전히 들려오는 가운데 김상범이 아랫바지만 겨우 걸치고 윗 파자마는 그대로 어깨에 맨 채 침실에서 나오며 하품을 한다. 이어 눈 을 비비며 창문의 커튼을 헤친다. 밝은 아침 햇살이 실내 가득 들어찬 다. 상범은 크게 기지개를 하고 나서 이른바 실내체조를 한다.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. 서른 한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이런 현상은 너 무나 빨리 찾아온 것 같다. 다음엔 소파며 마루에 흩어져 있는 잡지를 주워 모은다. 이어 무대 앞에 나와 관객을 향한다.

김상범 : 오늘 일요일 아침, 저 김상범은 몹시 피곤을 느낍니다. 밤새 잠을 청 할 수가 없으니까요. 이렇다 할 근심거리가 있어서가 아니요, 뭐 그렇다 고 해서 토요일 저녁에 보통 건강한 월급쟁이들이 그렇듯 술집에서 과 음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. 이 잡지 때문입니다. 충청은행 뒷골목에 서 한 권에 천 원 주고 산 이 영어잡지 말입니다. 영어잡지이기 때문에 물론 글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. 전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영어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. 어학에 대한 소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, 요새 대학 영 어선생들의 교수방법이 나빠서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. 이 정도의 구 실이 있어야만 마음에 부담이 안 생기니까요. 실은 이 잡지에 실린 수 많은 사진 때문에 잠을 못 잤지요. 젊은 여자들의 나체 사진, 나의 공상 의 심지에 슬슬 불을 붙여주는 이 매혹적인 사진들...... 사진 한 장을 보 면서 한 시간 또는 두 시간이나 공상을 합니다. 밤새 사진을 보고 있노 라면 새벽이 되고 두부장수가 지나가고, 이윽고 쓰레기차가 이 아파트 입구에 와서는 나의 피곤한 공상 속의 미국 여자를 무수한 쓰레기와 더 불어 쓸어 가지고 갑니다. (크게 하품을 하고서) 남은 것은 이 하품뿐입 니다. 이 잡지를 산 데도 이유는 있었습니다. 어제 토요일에 영화관에 갔었지요. 가장 이상적인 즐거움은 남녀가 같이 즐기는 데 있습니다. 하 나님이 남녀의 쌍을 지어준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. 그래서 모두 짝을 지어 구경 가는데 유독 저만은 혼자서 갔습니다.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죠. 영화의 내용은 열정적인 사랑인데, 보고 나오니까 마음이 이 상해졌습니다. 혼자서 대전극장통을 한 바퀴 삥 돌고, 지하상가의 인파 에 밀려 동백을 드나드는 젊은 여자들의 얼굴이며 몸뚱어리를 슬슬 훔 쳐보다가 충청은행 뒤에서 이 영어잡지를 두 권 사들고 들어왔습니다. 그러니까 오늘 새벽 세시까지 사진을 보면서 공상을 할 수 밖에 없었 죠. (다시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) 전 아직 총각입니다. 나이 서른 하나 에 이 사실이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으나, 그렇지만 이건 부 득이한 겁니다. 여자를 가까이 알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고, 여자를 알고 찾아갈 용기도 없습니다. 그래서 저런 잡지나 볼 수밖에 없지요. 가끔 기회가 있어도 영 용기가 안 납니다. 이를테면 요 4층에 사는 미 스 박의 경우가 그렇습니다.

(김치단지를 든 박용자가 무대 우측으로 들어와 상상적인 문을 노크한 다. 김상범이 상상적인 문을 연다)

박용자 : 안녕하셨어요?

김상범 : . (어색한 사이)

박용자 : ...... 김치를 담가 왔어요. 자취를 하신 다니까...... 어머니가 갖다 드리라 고 해서.......

김상범 : ...... 전 어머니 되는 분을 잘 모르는데요.

박용자 : ? ...... 저희들은 43호에 살고 있어요. 전 박용자라고 해요.

김상범 : ...... . 미스 박은 잘 압니다. 전 김상범입니다. 교회에서 봤습니다. 합창 단에 계시죠?

박용자 : . 저도 선생님을 교회에서 봤어요. 그럼 이 김치......

김상범 : (김치단지를 받으며) 아이, 이거 미안해서......

(김치단지를 받고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린다)

박용자 : 오늘은 참 날씨가 좋아요. 참말로 가을날씨 같아요.

김상범 : . 오후엔 좀 흐릴지 모르겠지만 오전엔 날씨가 괜찮군요. 몽고 지방 에 생긴 고기압권 내에 들었기 때문에......

박용자 : ...... 그럼 전 가보겠어요.

김상범 : ? (용자가 가버린다) ...... ...... 이거 잘 먹겠습니다. (관객에게) , 이렇습니다. 몽고 지방에 생긴 고기압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. 날씨가 좋다는 건 이 방에 들어와 얘기나 좀 하자는 건데....... 남녀간의 첫 대화 는 어째서 '날씨가 좋죠?''지금 시간이 몇 시죠?'따위로 시작이 되 어야만 할까요? 저 나체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짜 놓았던 여자 앞에서 의 멋진 대사며 연기가 실물 앞에선 맥을 못 춥니다. 하여간 43호에 사 는 박용자라는 여자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김치단지가 제 방에 드 나들게 됐습니다. 이런 참, 벌써 열 한시가 가까와졌습니다. 예배당에 가야겠습니다. (상의를 입고 머리를 빗는다) 요 아파트 바로 뒷길에 교 회가 하나 있습니다. 한 달 전에 하도 심심해서...... 글쎄, 일요일에는 왜 그렇게 심심한지요...... 하여튼 심심해서 교회에 가봤지요. 교회에서 들려 오는 여자들의 합창소리가 괜찮았거든요. 그래서 얼굴 구경도 할 겸 갔 었죠. 뒷자리에 앉아서 근처에 앉은 여자들, 그리고 합창단석에 앉은 젊 은 여자들의 얼굴이며 몸뚱어리를 감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. 그런데 어떤 날 이 예배당에서 우리 회사 사장을 만났습니다. 글쎄, 사장이 그 예배당의 장로가 아니겠어요. 돈과 종교는 표리일체로 붙어 다닌단 말 일까요? 사장은 저를 반가이 맞아주었습니다. 기특한 사원이라는 칭찬 도 했습니다. 그래서 저는 꼼짝을 못하고 억지 교인이 됐습니다. 여자를 보러 가던 '취미'가 갑자기 의무로 돌변했습니다. 사장이 매주일 나오냐 하고 묻기에 가끔 나온다고 했더니 매일요일마다 나오라는 겁니다. 할 수 있나요. 하기야 사장은 저의 은인입니다. 저를, 임시직원으로 있던 저를 정사원으로 승격시켜 준 분이 바로 사장입니다. 사장과는 묘한 관 계로 알게 되었죠. (뒷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보인다) 이 휴지로 맺어 진 인연입니다. 코를 풀고 뒷간에서나 쓰는 이 휴지 말입니다.

(무대 좌측 사무실에 조명이 던져진다. 과장석에 버티고 앉아 신문을 읽 고 있는 경리과장 배영민. 그 옆 조그만 책상에 마주 앉는 상범. 주판을 놓고 장부를 뒤적인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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